Monday, September 21, 2026

안녕하세요 대한민국, 오랜만입니다. 간혹 기분이 들면 긴 일기를 쓰기는 했었는데 하나같이 다 각 잡은 느낌이 들어서 쓰고 지운 것만 여러 번인 것 같아요. 글 역시 곡처럼 쓰는 행위만으로도 해소되는 게 있다 보니 여러분과 공유할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습니다. 미안해요. 앞으로는 자주 찾아오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마침 틴트도 4주년이겠다, 오늘은 평소보다 많은 위스키의 힘을 빌려 특별히 자가 검열 없이 아주 편안하게 근황을 전하려고 합니다. 마치 오픈 올 나잇 - 더 클래식 처럼. 음악 역시 이런 술기운으로 발매할 용기가 있었다면 여러분은 아마 지금 검정치마 12집을 듣고 계셨겠죠.


앨범이 나온 게 벌써 4년이 다 되었고, 마지막 공연도 1년이 넘은 시점인 만큼, 어떻게 지내나 궁금하시나요. 특별히 달라진 건 없고 작년 이후 잠깐 무절제한 일상을 보냈습니다. 그와중에도 억지로 작업실을 나가기는 했었는데, 몇 달 전쯤부터는 다시 정신을 차리고 꽤나 절제 있는 삶을 이어 나가고 있어요. 고백하건데 아마 햄버거는 평생 완전히 못 끊을 것 같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술을 원래 혼자 마시다 보니 흥에 취해 필요 이상으로 많이 먹는 경우는 의외로 잘 없습니다. 달라진 게 있다면 전에는 자극적인 피트 향에 이끌려 싱글 몰트를 주로 마셨고, 지금은 그냥 편의점 저가의 블렌디드 위스키를 아주 많은 양의 보리차에 타 먹는 걸 즐깁니다. 여름동안은 미첼라다를 정말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쿠팡에서 클라마토를 사서 라임이랑 우스터소스만 있으면 쉽게 만들 수 있는데, 맥주에 섞으면 멕시칸 미첼라다 (여름 픽), 위스키에 섞으면 위스키 시저 칵테일이 됩니다. 클라마토를 직접 만들어 먹기도 했는데, 토마토 주스 (100% 토마토. 설탕 없는), 소금, 우스터소스, 라임, 조개 육수, 핫소스, 셀러리 씨, 갈릭/어니언 파우더 등 조미료가 많이 들어가기는 합니다. 그래도 평소에 집에서 사용하는 것들이라서 만들기 귀찮을 뿐 어렵지는 않습니다. 여러분께 음주를 권하는 건 아니고요, 그냥 소맥보다는 나은 칵테일도 있다-라고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얼마 전에는 201의 바이닐이 발매되었죠. 바이닐이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라서 준비 과정에서 신경 쓸 일이 많았지만 여러분 덕분에 이번에도 큰 문제 없이 발매될 수 있었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처음으로 프레싱 공장에 여유가 있어서 선예매를 진행했는데요, 5만 장(!)이 넘는 물량을 찍었음에도 아직까지 찾으시는 분들이 계신 걸 보면 201은 진짜 1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꾸준히 사랑받는 앨범임이 확실하네요. 이번에도 혹시 정가 이상의 비용을 지불하며 뒤늦게 바이닐을 구매하려는 분이 계시다면, 서두르지 말고 이미 어어엄청나게 많은 분량이 시중에 풀렸다는 사실만 기억해주세요. 2집은 빠르면 올해 발매할 예정이고, 나머지 앨범들 역시 시간이 다소 걸리더라도 순차적으로 재발매할 예정입니다. 동일 스펙으로 예판 할 거니까 안심하셔도 됩니다.


근황을 더 꺼내 보자면 요즘 들어 유튜브를 보는 시간이 전보다 늘었습니다. 한편으로는 그만큼 영화를 보는 시간이 줄어서 이래도 괜찮나 싶다가도, 20대부터 지금까지 거의 하루에 한 편씩 영화를 본 사람으로서 매일 보는 B급 호러 영화나, 유튜브나 문화생활적인 측면에서 가지는 인풋이 크게 다를 게 있나 싶네요. 그래도 일단 이번 주에는 기대하던 레지던트 이블을 보러 갈 생각입니다. 사실 그동안은 TV에 나오는 연예인은 당연하게 보면서도 유튜버, 인플루언서라는 개념을 속에서 인정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던 것 같아요. 유튜브는 좋아하는 밴드의 뮤비나 공연 영상을 찾아보는 것 말고는 ‘로직 플러그인 에러 해결 방법’이라든지, ‘미림 없이 두부조림하는 법’ 같이 나에게 즉각적인 보상을 주는 영상들만 찾아봤었는데, 지금은 즐겨 찾는 채널들이 꽤 생겼습니다. 별거 아니긴 한데 그래도 이런 거에 쉽게 동질감을 느낄 분들이 계실 걸 알기에 공유하자면,


먼저 Outdoor Boys. 가장 좋아하는 유튜버들 중 하나였는데 지금은 은퇴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주로 알래스카에서 캠핑하는 영상을 올리는데, 밀가루와 녹은 눈으로 대충 반죽한 빵을 달궈진 삽자루에 구운 뒤 허니버터에 찍어 먹는 게 구독자들이 열광하는 하이라이트입니다. 오래된 농담 같은 조휴일 = 알래스카는 나에게 어떤 확실한 계시였기 때문에 언젠가는 알래스카에서 앨범을 만드는 날이 올 것 같고, 그 앨범이 아마 나의 가장 위대한 앨범이 되지 않을까 같은 생각도 합니다. Canned Fish with Mathew Carlson. 모든 종류의 생선 통조림들을 리뷰하는 남자의 채널입니다. 저는 원래부터 생선을 별로 안 좋아하고, 정확히는 어패류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기생충에 대한 끔찍한 공포를 가지고 있거든요. 그러다 몇 년 전부터 대공황 시대나 러시아 지하 벙커에서 먹을 것 같은 비주얼의 정어리 통조림에 흥미를 느껴서 술안주로 먹다 보니 이제는 맛보다는 생선 통조림을 술안주로 따 먹는다는 남자다운 행위에 매료된 것 같습니다. 이 채널의 묘미는 에피소드마다 배경음악으로 나오는 멍청한 일렉트로니카 비트들인데, 채널 주인이 유로랙을 가진 걸로 보아 직접 만드는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묘하게 비린내가 나는 음악과 콘텐츠의 드라이한 조합이 마음에 듭니다 (근데 저는 최근에 비늘이 다시 징그러워져서 통조림을 잘 안 먹습니다). 그 외에도 무거운 주제들을 게임의 내러티브를 빌려 풀어내는 채널의 Jacob Geller, 비디오 게임은 별로 안 좋아하지만 웬만해서는 이런 딥다이브 스타일의 게임 관련 비디오 에세이들이나 채널을 다 좋아해서 틀어 놓고 샤워를 하거나 잠에 드는 일이 많습니다. 과거의 인간들은 무엇을 먹었을까 항상 궁금해 온 사람으로서 Tasting History with Max Miller 역시 즐겨 보고요. 국내 채널들, 특히 여행 유튜버들은 뭔가 하나씩 코드가 안 맞아서 영상 하나를 끝까지 보기가 힘든데, 우연히 폭간트라는 아저씨의 채널을 발견하고 나서부터는 자주 즐겨봅니다. 내용은 별거 없는데 새벽에 틀어 놓으면 술동무가 되기도 하고, 어떻게 사람이 (나랑 다르게) 저렇게 긍정적일까 싶어서 계속 보는것 같아요. 그중에서도 저는 국내 캠핑/여행 편을 좋아하고요, 모든 에피소드마다 깨알같은 역사적 지식을 자랑해서 듣고만 있어도 시간이 잘 갑니다. 얼마 전에는 와이프한테 틴트러블즈 4주년을 기념해서 폭간트 아저씨 유튜브에 앨범 리뷰 바이럴 같은 걸 돌리고 싶다고 했다 핀잔을 들었더랬죠. 여기까지가 제가 즐겨 보는 유튜브 채널들이었습니다. 이것보다는 좀 더 많은 것 같긴 한데 구독이나 좋아요 같은 걸 안 누르다 보니 기억이 안 나요. 티비쇼는 최근 Silo를 가장 재밌게 봤어요. 


가장 궁금해하실 다음 앨범 관련해서 말씀을 드리자면 이제 절반 정도는 곡이 채워진 것 같아요. 아마 작년에도 똑같이 얘기한 것 같은데 그렇다고 그동안 곡을 하나도 안 쓴 건 아니고, 이번에는 스토리보다 사운드에 통일성을 부여하고 싶었기 때문에 윤곽을 잡는 데까지 시간이 좀 걸렸던 것 같아요. 팀베이비/떨스티를 동시에 작업했을 때처럼 색깔이 안 맞는 곡들은 다른 폴더로 빠지다 보니 앨범에 진전이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고요. 제가 어린 시절엔 증명할 필요가 없는 것들을 증명하려고, 혹은 나의 우상들과 같은 마법이 나에게도 있는지 없는지 확인해 보려는 시간을 길다면 길게 보냈습니다. 아무래도 ‘음학’적으로만 이야기할 때 뮤지션으로서 나의 지식은 너스레 없이 도레미를 처음 배운 이후부터 지금까지도 원시적인 수준이라서, 어렸을 때는 그것에 동반된 자격지심과 ‘난 아무것도 몰라도 남들보다 훨씬 더 잘해’ 같은 펑크적 자신감이 항상 동시에 작용하지 않았나 싶어요. 그러면서 굳이 안 가도 될 길을 멀리 돌아오느라 앨범마다 장르를 넓게 팠던 것 같고요 (ADHD). 물론 그동안의 모든 검정치마의 음악이 내 개인적 음악 취향의 변화를 그래프처럼 따라오긴 했지만, 계속해서 몇곡 정도는 내 스타일이 아니더라도 꼭 ‘나 이런 것도 잘함’ 같은 인정욕구에 기반한게 있었달까요 (ex. 기다린 만큼 더, 민, 할리우드 등등). 무슨 말인지 모르겠죠? 괜찮아요. 자조 섞인 말로 들렸다면 절대 그런건 아니고 그냥 지난 과정을 돌아보니 새삼 음악을(만) 되게 오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새 앨범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본질에 좀 더 가까워졌습니다. 속된 말로 표현해서 ‘원래보다도 더, 후까시가 없다’가 앨범에 대한 유일한 힌트라면 힌트입니다. 


얘기 한적 없는것 같은데, Everything이 더 이상 내 노래 같이 들리지 않고, 더렵혀 졌다는 생각에 잠을 못 이루던 게 몇 년 전입니다. 내가 확실히 가질 수 있는 한 조각이라고 믿었던 것이, 귀에 거슬리는 흐름으로 흘러가는 걸 지켜보며 느꼈던 어쩔수 없는 씁쓸함이 있습니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그것도 별것이 아닌게, 그 이후로 틴트러블즈가 세상에 나왔고, 저에게는 그것이 무엇보다 확실한 마법의 증거였습니다. 그동안은 음악을 하며 느껴보지 못했던 홀가분함이였으며, 여러분에게는 아마 제가 들려드릴 수 있는 가장 크고 가까운 제 개인의 역사였던것 같습니다. 요즘도 창작에서의 보상은 저에게 진짜 가끔씩만 찾아오는 편입니다. 그리고 그런 특별한 날에는 다음 앨범이 훨씬 좋을 것 같다는 믿음에 감정이 복받쳐 오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틴트러블즈가 앞으로도 내가 가장 사랑할 앨범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으니, 이번 4주년도 함께 축하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는 아직까지도 이세상 모든게 시시할 정도로 음악만이 좋고요, 노래를 만들때만 나의 허술하고 말캉한 존재에 가치를 부여할 수 있다고 느낍니다. 어쩔때는 한계가 보여서 울고 싶고, 100번을 죽어도 벗어나지 못 할 저주같기도 해요. 그럼에도 이제는 그 과정에 여러분이 함께 한다는 사실에 날이 갈 수록 큰 위안을 얻습니다. 내 진심이 글로 전달 될까요. 서둘러 오지는 못 해도 쉽게 떠나지 않을게요. 항상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다다음 진달래 필때 봅니다. 


-조휴일<3




Saturday, September 19, 2026

돌아왔다능 😂

오랫동안 사용했던 블로그 계정이 통으로 날아갔다. 정확히는 블로그를 소흘히 하는 동안 Blogger, (구)Blogspot이 구글에 통합되면서 더 이상 Gmail 계정이 아니고서야 로그인 조차 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원래 블로그는 2010년 잠깐 미국에 돌아가 있는 동안 만들었던 2집의 작업일지를 위한 공간이었다. 내 성격에 아마 당시에도 글 만큼은 최대한 담담하고 무탈한듯 포장하려 노력했겠지만 2집을 만들며 겪었던 에피소드들이라던지, 사귄지 1년도 안된 여자친구 (현)아내와 떨어져있는 동안 느꼈던 외로움, 그리고 멀리서 나 없이도 잘 돌아가던 홍대를 지켜보며 커졌던 초조함이 군데군데 묻어있을 젊은 시절의 기록이 없어졌다고 생각하니 아쉬운 마음을 감출수가 없다. 팀베이비가 나온 뒤 부터는 전부 비공개로 돌리긴 했지만. 

2008년 만나이 스물다섯에 나름 큰 기대를 품고 고국에 돌아왔었다. 비록 내가 갈망했던 것에 비해서는 보잘것 없는 반응이었지만 실망할 겨를이 없을 정도로 바쁜 나날이었다. 항상 불안을 안고 사는 나에게도 작은 인기는 가끔씩 영원할 것 같은 순간들을 안겨주었다. 클럽들을 돌며 매주 커다란 환호와 때창에 휩싸여 무대를 내려올때면 함께 무대를 나누던 밴드들에 대한 애정도 같이 깊어졌는데, 사실 그들의 음악보다도 함께 있을때 느끼던 소속감이 나를 들뜨게 만들었었다. 나와 밴드들이 속해있는 소속사는 나에게 집이었고, 가족이었다. 배경만 좀 다르지 나와 같은 부족의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바램이었다. 2세대 인디락 부활 대축제 같던 시기에도 고작 500명 남짓의 팬덤을 돌려가며 굴러가던 홍대씬에 나는 뿌리없는 이방인일 뿐이었고, 새친구들을 잔뜩 사귀어 들떠있었을뿐, 따지고 보면 이곳에 다시 초대받은 적도 없었다. 

활활 타오를 것 같던 우리 부족의 불은, 검정치마 데뷔 1년만에 한강둔치에서 날리는 폭죽보다 조용하고 빠르게 꺼졌다. 살면서 처음 맛보는 배신감과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난 거의 매일 찔끔찔끔 눈물을 쏟거나 여자친구 집에서 하루의 절반 이상을 잠들어있었다. 자본이 없으니 당장 노래들이 쏟아져 나온다 해도 다음 앨범은 내게 먼 미래의 얘기일 뿐이었다. 데뷔 후 수만장이 팔려나갔다는 앨범은 그동안 한번도 정산을 받은적이 없었고, 아무런 페이도 없이 일주일에 두세번씩 클럽을 가득 채워 공연을 했다. 가끔 지방을 가거나 대표의 기분이 엄청 좋은 날에는 밴드당 50만원이 떨어졌다. 그럼에도 나는 전혀 불만이 없을 정도로 멍청했고, 인디음악이니까 당연히 그런 줄 알았다. 한번은 EBS 공감 녹화가 있던날 대표에게 돈 얘기를 꺼내는 베이스 멤버의 멱살을 잡고 내음악이 파는 물건처럼 보이냐며 병신같이 쌩쑈를 했다 (똑똑한 친구였는데 지금 생각하면 너무 미안하다). 그런 우릴 실실 웃으며 쳐다보던 대표 멱살을 잡았어야 되는데 당시에는 진짜 너무 어리고 멍청했다. 

다행히 소속사에 있던 다른 밴드들이 동시 다발적으로 탈퇴를 주도한 덕분에 검정치마도 같은 시기에 계약을 해지 할 수 있었고, 201의 판권을 되찾은 뒤에는 디지털 음원에 대한 소액의 돈도 돌려 받았다. 데뷔후 처음이자 마지막 정산이었고, 내 다음 앨범과 미국에서의 월세를 10개월 정도 커버할 수 있는 금액이었다. 이제와서 하는 얘기지만 커리어 초반에 이런 큰 인생레슨을 받을수 있었던게 오히려 고맙다는 생각도 든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다 좋은 사람은 아닐꺼라는 합리적인 의심을 넘어, 그전과는 달리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불신이 깊게 생겼달까. 만약 내 홍대 정착기가 순탄했다면 데뷔이후의 음악적 행보는 지금과는 매우 달랐을것이다. 불합리한 계약 일지언정 지금까지 같은 소속사를 유지했을것임은 물론이고.

일이 있고 난 후 미국으로 돌아가기 한달 남짓 남았을때, 처음으로 공황발작을 겪었다. 퇴근길 만원 지하철을 타고 가던 도중 갑자기 승객들이 나를 째려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그들이 나를 칼로 난도질 할 것 같다는 망상 때문에 숨쉬는게 점점 어려워졌다. 뭔가 이상함을 감지한 여자친구가 눈치 빠르게 입고있던 코트를 풀어 벌려준 덕분에 나는 내 키 반만한 여자친구 코트속에 머리를 끝까지 쳐박은채 숨쉬는 방법을 까먹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밖을 내다보면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에 죽을수도 있다는 생각에 두려웠다. 이후로 불행하게도 난 미국에서 2집을 끝낼때까지 크고 작은 패닉어택을 자주 겪었다. 미국에 돌아갔을 때가 아마 4월쯤이었다. 한동안은 고등학교 친구들도 만나고 좋아하는 음식들을 먹으며 기분전환을 했다. 블로그에는 새로 산 디지털 카메라로 월세집 사진도 올리고, 장보고 드라이브를 다니는 일상도 공유했다. 한국으로부터 물리적 거리가 멀어진 탓에 새롭게 시작하는 기분이었다.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얼마지나지 않아 다시 찾아온 공황발작 때문에 한동안은 음식을 삼킬때마다 목에 음식이 걸려 질식사 할 것 같다는 공포에 시달렸었다. 햇반 하나를 풀이 될 정도로 끓여 사흘동안 나눠 먹기도 했다. 결국에는 괜찮아졌지만.

그럼에도 녹음은 시작 할 수 밖에 없었다. 엎친데 덥친 격으로 앨범이 한창 진행중에 있을때 녹음을 도와주던 친구와 다투는 일이 있었고, 그는 여태까지 우리가 녹음해온 파일이 담긴 하드를 인질로 잡아 어디론가 잠적해버렸다. 가뜩이나 정신상태가 불안했던 나는 얘를 발견하는 즉시 야구빠따로 뚜드려 때릴 계획을 세웠었다 (당시에는 다른 방법이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징징대던 나를 보러 마침 한국에서부터 날아 온 여자친구와는 매일 녹음실 근처에 100만원짜리 폐차직전의 미니밴을 주차해놓고 둥굴레 차를 마시며 잠복수사를 했다. 결국엔 화해 아닌 화해(?)를 통해 녹음을 재개하고 무사히 앨범 발매까지 이어졌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 그러기에는 음악의 내용은 물론, 만드는 과정까지 배신이라는 키워드에 잠식되어 버린 앨범이 나와버렸다. 한편으로는 가삿말에 너무 날을 세워서 카르마의 벌을 받는게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봤다. 

2집은 출국을 앞두고 굉장히 짦은 시간동안에 만든 노래들이기도 하고, 처음부터 멜로디 보다는 가사를 위주로 작곡했기 때문에 작곡적으로 아쉬운 부분들이 있다. 여유가 없었던 관계로 앨범에 담아내지 못한 디테일들은 지금까지도 내 귓가에만 남아 멤돈다. 앨범의 속내와 작업과정을 모르는 상태에서는 듣는 2집은 그 헐벗음이 나름의 매력으로 작용하겠지만, 나에게는 동반된 모든 기억들이 쓰리기만 하다. 숨이 꼴딱꼴딱 넘어가는 와중에도 '어, 괜찮음. 나 이거 그냥 수영하는거임' 하고 태연하게 말할수 있는 사람이되고 싶었던 것 같다. 현실에서 불가능 하다면 적어도 노래에서 만큼은.

그렇게 한국으로 돌아와 2집 활동을 하면서도 블로그는 꾸준히 썼었다. 2집 활동을 마무리 하고 나서부터는 사람들이 내 소식을 확인 할 수 있는 유일한 창구이기도 했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공유하며 얻는 기쁨도 있었다. 그러다 약 10년전(시간이 이렇게 빠르다) 힙스터가 얼마나 웃긴건지에 대해 쓴 글이 인터넷에 퍼지면서 처음으로 이곳도 내 공간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었던것 같다. 가끔은 나의 즐거움을 위해서라도 가볍게 일기를 쓰고 싶은데 뭐가 부끄러운지 매번 지우고 만다. 


Tuesday, July 4, 2023

Arlette

예전에 코난 오브라이언이 진행하는 토크쇼에서 가장 남자다운 이름을 가진 사람을 뽑는 콘테스트를 적이 있다. 승자의 이름이 ‘Max Fightmaster’였는데, 한국 이름으로 치면 강철남 같은 느낌이다. 아무튼 이름 조합이 너무 상상 이상으로 쎄서 웃긴 코너의 포인트였다. 내가 알던 사람 중에도 이런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있다. 마치 히어로물 빌런에나 어울릴법한 퍼스트 네임과, 판타지물에서 용을 잡는 용사 드래곤 슬레이어(!) 때의 슬레이어랑 비슷한 발음의 라스트 네임 덕분에, Electra 남녀 통틀어 내가 살면서 가장 강력한 조합의 이름을 가진 사람이었다. 일렉트라의 엄마인 알렛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도대체 누가, 딸에게 이런 드센 이름을 지어줬는지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그녀를 번이라도 만나본 사람에겐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을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아주 약간의 상상력과 짓궂음을 더해서 알렛을 지금 머릿속에 그려본다면, 인어공주(1989) 우르슬라에 스타워즈 시리즈의 자바 헛을 살짝 섞은 모습이다. 일반 가정집 화장실 만한 부엌에서 거의 항상 혼자 앉아 맥주를 마시던 그녀는 천장에 닿을 듯이 뻗친 검은 곱슬머리와, 당장이라도 터질 같은 눈동자를 감싼 흰자를 번뜩이며 우리를 맞이해주곤 했었는데, 기분이 좋을 - 아마 많이 취했을 때는 침을 잔뜩 묻혀가며 억지로 뽀뽀를 했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알렛을 봐온 바스코는 그녀의 애정표현을 즐기는 편이었고, 그녀 얼굴의 사마귀가 볼에 닿는 소름 끼치게 싫으면서도, 보는 앞에서 침을 닦는 미안해서 닦은 적은 없었다.


알렛 있었어요? 일렉트라는요?’


안녕 애기들아. 나도 몰라, 어젯밤부터 들어왔어... 썅


우리 여기서 놀다 가도 돼요?’


나도 몰라. 너네 혹시 5 있니? 이게 마지막 담배라서


아뇨... 미안해요


공연 알렛과의 기억을 짧게 얘기한 적이 있는데, 요약하면 추석 명절 우리 집에서 남은 동태전을 들고 놀러 갔을 알렛이 아주 맛있게 먹었다는 내용이었다. 기억이 아직까지 내게 가장 선명한 이유는 그날을 제외하고 그녀가 뭔가를 먹는 것을 번도 적이 없기 때문이다. 정부 지원금으로는 술을 없기 때문에 우리는 그녀가 어떻게 맥주를 사는지 없었다. 확실한 집에서 크래커 부스러기 하나조차 음식 비슷한 적이 없었고, 왜인지 그날 처음으로 알렛의 비대한 몸이 오직 맥주로만 만든 것이었다는 사실도 깨달았었다. 그렇다고 그녀가 항상 그런 모습은 아니었다. 앞서 그녀를 괴물처럼 묘사하긴 했지만, 헬스 엔젤스와 어울리던 젊은 시절 사진 속의 알렛은, 토탈리콜(1990) 나오는 여주 멜리나와 매우 닮은 모습이라서, 집에 놀러 때마다 우리는 그녀의 리즈시절 사진을 자주 돌려 보곤 했었다.


당시에도 추측했지만 알렛은 여러 가지 크고 작은 정신적 질병에 시달렸던 같다. 목소리는 얼마나 컸는지, 뭔가 음침한 얘기를 하느라 속삭일 때를 제외하고는, 바로 앞에서 대화할 때도 기본 데시벨이 금요일 11 헌팅 포차 만취남 레벨이었다. 어디까지 믿어야 될지 모를 같은 얘기들을 자주 늘어놓고는 했었는데, 그중에는 항상 일렉트라의 마더에 관한 얘기도 있었다. 뉴욕의 부잣집 딸로 태어나서 평생을 헤로인 중독자로 살았음에도 별문제가 없었다고. 단지 대부분의 중독자들은 돈이 바닥나면서부터 더러운 길거리 약으로 갈아타기 때문에 인생이 힘들어지는 것이지, 돈만 많으면 헤로인을 하면서도 나름 건강하게 있다고 했다. 얘기의 끝은 비참한데, 어느 없는 이유로 꼬리를 자르고 싶었던 딜러가 그녀의 헤로인에 드레이노 가루 (머리카락도 녹인다는 강력한 배관세척제) 섞어주었고, 중환자실에 누워 며칠 동안 혈관이 녹아내리고, 장기가 망가지는 것을 온전히 느끼며 죽었다고 했다. 어려서부터 같은 얘기를 수백 듣고 자랐을 일렉트라도 결국 헤로인에 손을 댔으니, 지금 보면 팔자라는 정말 있나 싶다. 세상의 온갖 위험을 끌어당길듯한 이름과, 마더와의 연결고리까지, 정말 어쩔 없었을까.


집을 드나들던 사람들 역시 특별했다. 모두 알렛의 지인들이었지만 사회 울타리에서 약간씩 벗어나있던 사람들을 우리는 (적어도 나와 바스코는) 항상 적당한 거리에서, 적당한 호기심으로만 대하는 법을 알았다. 집에서 마지막으로 만난 손님은 알렛의 남자친구였다. 이미 일렉트라는 집에 아예 들어오는 시점이었지만 비교적 담이 작은 우리가 일탈을 즐기려면 그곳만큼 편한 장소가 없었다. 그날 알렛 대신 우리를 맞이한 사람은 까무잡잡한 피부의 외국 남자였다. 크로아티아에서 화물선박으로 밀입국했다는 그의 이름은엘비스였다. 액면가는 36살이었지만 알렛은 그를 18살로 소개했다. 대충 들어보니 동네 바에서 우연히 만난 날부터 이미 집에 들어와 함께 살고 있는 같았다. 하나부터 열까지 범죄의 느낌을 진하게 풍기던 남자는 '나이쓰' 라는 표현 말고는 영어를 몰랐고, 담배로 지진 같은 목에서는 말할 때마다 처음으로 가래 끓는 소리가 났었다. 처음 보는 표정으로 비대한 몸을 트는 알렛에게, 눈썹 한번 찌푸리지 않고 혓바닥을 밀어 넣는 엘비스를 보며 우리는 없는 두려움을 느꼈었다. 또래였음에도 그는 분명 위험한 남자였고, 이상 우리가 집에 드나들 일이 없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물론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동네엔 가뭄이 계속됐다. 나와 라라 그리고 바스코 우리 셋은 뭐라도 건지려고 늦은 밤까지 일렉트라의 앞을 서성이고 있었다. 엘비스가 들어온 이후부터 이미 우리는 초대받지 않은 손님인 알았기 때문에 아무도 집안으로 들어가자는 얘기는 꺼내지 않고 있었다. 그때 가로등이 밝히던 골목 끝에서 작은 실루엣이 우리를 향해 다가오는 보였다. 실루엣은 점차 사람의 모습을 띄었고, 우리 사이에 가로등이 개쯤 남았을 갑자기 하늘로 뭔가를 던지는게 보였다. 곧바로 엄청난 소리와 함께 물체는 정확히 사람 얼굴로 떨어졌고, 잠시 주저앉나 싶더니, 금방 실없는 웃음을 터뜨리며 다시 우리 쪽으로 걸어왔다. 가만히 보니 일렉트라였다.


꺄하하하하 너네 방금 봤니??? 진짜 봤어야 되는데


‘…… 괜찮아?’


분명히 내가 물병을 잡을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꺄아하학, 정말 병신 같네


어디서 오는 거야?’


누구세요? 알아요?’

methhead로 전락해 버린 일렉트라가, 딱지 앉은 창백한 얼굴위로 눈을 뜨며 우리에게 물었다. 마침 밖의 소란스러움에 이끌린 알렛이 발코니로 몸을 드러냈다. 그녀는 아예 다른 사람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얼굴이 달라져있었다. 해골처럼 삐쩍 마른 얼굴은 환하게 웃고 있었지만 겨드랑이부터 팔목까지 한없이 늘어진 살은 그녀의 몸에 거적대기처럼 걸쳐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고는 아무도 알아듣지 못할 말을 연달아 크게 외치더니 금세 다시 사라져 버렸다. 잠시 후 일렉트라 마저 집에 들어가고 한참 동안 흐르던 정적을 라라가 깼다.


‘Ugh, did you see Arlette? I think she started shooting up cocaine since Elvis moved in’


‘What? you can shoot up cocaine?’


You are not supposed to unless you are a fucking crackhead, but I heard some things last time I was over at their place. Besides, knowing their financial situation the stuff they are using is probably cut with dirty shit. I bet she’s just straight up shooting speed at this point’


‘But fuck…. that was really scary just now … what was she yelling? Did she even see us?’


’No fucking clue ….’


이 얘기를 어떻게 끝맺어야 할 모르겠지만, 결국 그날은 우리가 알렛과 일렉트라를 마지막 날이 되어버렸다. 가사와는 다르게  이상 아린 기억도 아니고, 또 선명하지도 않지만, 틴트러블스는 아무리 밝은 색깔로 덧칠해도 나에게만 보이는 밑그림이 남아있다. 영영 흐려지기 전에 가엾은 그녀들을 기억해 봤다.






*추가* 편의상 글에서 일렉트라 엄마의 경우 가명을 사용했다. 그리고 이건 최근에 알게 사실인데, 라라와 일렉트라는 7 편부모/저소득층 아이들만 참여할 있는 썸머캠프로 떠나는 버스 안에서 처음 만났다고 한다. 수십 명의 애들이 버스가 떠나가게 우는 와중에 라라와 일렉트라만 울지 않고 있다가 서로 눈이 마주쳐서 옆자리에 앉게 되었다고 한다. 와중에 일렉트라는 워크맨으로 알렛이 메탈리카 테이프를 듣고 있었다고. 캠프에 도착해서는 3 1실을 쓰게 되었는데, 거기서도 우연히 일렉트라와 라라가 같은 방에 배정이 되었고, 다른 명의 여자아이가 마음에 들었던 일렉트라는 걔가 레즈비언이라는 소문을 퍼뜨려서 다른 방으로 보냈다고 한다. 둘이 친해진 계기가 웃겨서 적어본다. 떡잎부터 노랬던 맞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