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September 21, 2026

안녕하세요 대한민국, 오랜만입니다. 간혹 기분이 들면 긴 일기를 쓰기는 했었는데 하나같이 다 각 잡은 느낌이 들어서 쓰고 지운 것만 여러 번인 것 같아요. 글 역시 곡처럼 쓰는 행위만으로도 해소되는 게 있다 보니 여러분과 공유할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습니다. 미안해요. 앞으로는 자주 찾아오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마침 틴트도 4주년이겠다, 오늘은 평소보다 많은 위스키의 힘을 빌려 특별히 자가 검열 없이 아주 편안하게 근황을 전하려고 합니다. 마치 오픈 올 나잇 - 더 클래식 처럼. 음악 역시 이런 술기운으로 발매할 용기가 있었다면 여러분은 아마 지금 검정치마 12집을 듣고 계셨겠죠.


앨범이 나온 게 벌써 4년이 다 되었고, 마지막 공연도 1년이 넘은 시점인 만큼, 어떻게 지내나 궁금하시나요. 특별히 달라진 건 없고 작년 이후 잠깐 무절제한 일상을 보냈습니다. 그와중에도 억지로 작업실을 나가기는 했었는데, 몇 달 전쯤부터는 다시 정신을 차리고 꽤나 절제 있는 삶을 이어 나가고 있어요. 고백하건데 아마 햄버거는 평생 완전히 못 끊을 것 같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술을 원래 혼자 마시다 보니 흥에 취해 필요 이상으로 많이 먹는 경우는 의외로 잘 없습니다. 달라진 게 있다면 전에는 자극적인 피트 향에 이끌려 싱글 몰트를 주로 마셨고, 지금은 그냥 편의점 저가의 블렌디드 위스키를 아주 많은 양의 보리차에 타 먹는 걸 즐깁니다. 여름동안은 미첼라다를 정말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쿠팡에서 클라마토를 사서 라임이랑 우스터소스만 있으면 쉽게 만들 수 있는데, 맥주에 섞으면 멕시칸 미첼라다 (여름 픽), 위스키에 섞으면 위스키 시저 칵테일이 됩니다. 클라마토를 직접 만들어 먹기도 했는데, 토마토 주스 (100% 토마토. 설탕 없는), 소금, 우스터소스, 라임, 조개 육수, 핫소스, 셀러리 씨, 갈릭/어니언 파우더 등 조미료가 많이 들어가기는 합니다. 그래도 평소에 집에서 사용하는 것들이라서 만들기 귀찮을 뿐 어렵지는 않습니다. 여러분께 음주를 권하는 건 아니고요, 그냥 소맥보다는 나은 칵테일도 있다-라고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얼마 전에는 201의 바이닐이 발매되었죠. 바이닐이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라서 준비 과정에서 신경 쓸 일이 많았지만 여러분 덕분에 이번에도 큰 문제 없이 발매될 수 있었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처음으로 프레싱 공장에 여유가 있어서 선예매를 진행했는데요, 5만 장(!)이 넘는 물량을 찍었음에도 아직까지 찾으시는 분들이 계신 걸 보면 201은 진짜 1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꾸준히 사랑받는 앨범임이 확실하네요. 이번에도 혹시 정가 이상의 비용을 지불하며 뒤늦게 바이닐을 구매하려는 분이 계시다면, 서두르지 말고 이미 어어엄청나게 많은 분량이 시중에 풀렸다는 사실만 기억해주세요. 2집은 빠르면 올해 발매할 예정이고, 나머지 앨범들 역시 시간이 다소 걸리더라도 순차적으로 재발매할 예정입니다. 동일 스펙으로 예판 할 거니까 안심하셔도 됩니다.


근황을 더 꺼내 보자면 요즘 들어 유튜브를 보는 시간이 전보다 늘었습니다. 한편으로는 그만큼 영화를 보는 시간이 줄어서 이래도 괜찮나 싶다가도, 20대부터 지금까지 거의 하루에 한 편씩 영화를 본 사람으로서 매일 보는 B급 호러 영화나, 유튜브나 문화생활적인 측면에서 가지는 인풋이 크게 다를 게 있나 싶네요. 그래도 일단 이번 주에는 기대하던 레지던트 이블을 보러 갈 생각입니다. 사실 그동안은 TV에 나오는 연예인은 당연하게 보면서도 유튜버, 인플루언서라는 개념을 속에서 인정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던 것 같아요. 유튜브는 좋아하는 밴드의 뮤비나 공연 영상을 찾아보는 것 말고는 ‘로직 플러그인 에러 해결 방법’이라든지, ‘미림 없이 두부조림하는 법’ 같이 나에게 즉각적인 보상을 주는 영상들만 찾아봤었는데, 지금은 즐겨 찾는 채널들이 꽤 생겼습니다. 별거 아니긴 한데 그래도 이런 거에 쉽게 동질감을 느낄 분들이 계실 걸 알기에 공유하자면,


먼저 Outdoor Boys. 가장 좋아하는 유튜버들 중 하나였는데 지금은 은퇴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주로 알래스카에서 캠핑하는 영상을 올리는데, 밀가루와 녹은 눈으로 대충 반죽한 빵을 달궈진 삽자루에 구운 뒤 허니버터에 찍어 먹는 게 구독자들이 열광하는 하이라이트입니다. 오래된 농담 같은 조휴일 = 알래스카는 나에게 어떤 확실한 계시였기 때문에 언젠가는 알래스카에서 앨범을 만드는 날이 올 것 같고, 그 앨범이 아마 나의 가장 위대한 앨범이 되지 않을까 같은 생각도 합니다. Canned Fish with Mathew Carlson. 모든 종류의 생선 통조림들을 리뷰하는 남자의 채널입니다. 저는 원래부터 생선을 별로 안 좋아하고, 정확히는 어패류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기생충에 대한 끔찍한 공포를 가지고 있거든요. 그러다 몇 년 전부터 대공황 시대나 러시아 지하 벙커에서 먹을 것 같은 비주얼의 정어리 통조림에 흥미를 느껴서 술안주로 먹다 보니 이제는 맛보다는 생선 통조림을 술안주로 따 먹는다는 남자다운 행위에 매료된 것 같습니다. 이 채널의 묘미는 에피소드마다 배경음악으로 나오는 멍청한 일렉트로니카 비트들인데, 채널 주인이 유로랙을 가진 걸로 보아 직접 만드는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묘하게 비린내가 나는 음악과 콘텐츠의 드라이한 조합이 마음에 듭니다 (근데 저는 최근에 비늘이 다시 징그러워져서 통조림을 잘 안 먹습니다). 그 외에도 무거운 주제들을 게임의 내러티브를 빌려 풀어내는 채널의 Jacob Geller, 비디오 게임은 별로 안 좋아하지만 웬만해서는 이런 딥다이브 스타일의 게임 관련 비디오 에세이들이나 채널을 다 좋아해서 틀어 놓고 샤워를 하거나 잠에 드는 일이 많습니다. 과거의 인간들은 무엇을 먹었을까 항상 궁금해 온 사람으로서 Tasting History with Max Miller 역시 즐겨 보고요. 국내 채널들, 특히 여행 유튜버들은 뭔가 하나씩 코드가 안 맞아서 영상 하나를 끝까지 보기가 힘든데, 우연히 폭간트라는 아저씨의 채널을 발견하고 나서부터는 자주 즐겨봅니다. 내용은 별거 없는데 새벽에 틀어 놓으면 술동무가 되기도 하고, 어떻게 사람이 (나랑 다르게) 저렇게 긍정적일까 싶어서 계속 보는것 같아요. 그중에서도 저는 국내 캠핑/여행 편을 좋아하고요, 모든 에피소드마다 깨알같은 역사적 지식을 자랑해서 듣고만 있어도 시간이 잘 갑니다. 얼마 전에는 와이프한테 틴트러블즈 4주년을 기념해서 폭간트 아저씨 유튜브에 앨범 리뷰 바이럴 같은 걸 돌리고 싶다고 했다 핀잔을 들었더랬죠. 여기까지가 제가 즐겨 보는 유튜브 채널들이었습니다. 이것보다는 좀 더 많은 것 같긴 한데 구독이나 좋아요 같은 걸 안 누르다 보니 기억이 안 나요. 티비쇼는 최근 Silo를 가장 재밌게 봤어요. 


가장 궁금해하실 다음 앨범 관련해서 말씀을 드리자면 이제 절반 정도는 곡이 채워진 것 같아요. 아마 작년에도 똑같이 얘기한 것 같은데 그렇다고 그동안 곡을 하나도 안 쓴 건 아니고, 이번에는 스토리보다 사운드에 통일성을 부여하고 싶었기 때문에 윤곽을 잡는 데까지 시간이 좀 걸렸던 것 같아요. 팀베이비/떨스티를 동시에 작업했을 때처럼 색깔이 안 맞는 곡들은 다른 폴더로 빠지다 보니 앨범에 진전이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고요. 제가 어린 시절엔 증명할 필요가 없는 것들을 증명하려고, 혹은 나의 우상들과 같은 마법이 나에게도 있는지 없는지 확인해 보려는 시간을 길다면 길게 보냈습니다. 아무래도 ‘음학’적으로만 이야기할 때 뮤지션으로서 나의 지식은 너스레 없이 도레미를 처음 배운 이후부터 지금까지도 원시적인 수준이라서, 어렸을 때는 그것에 동반된 자격지심과 ‘난 아무것도 몰라도 남들보다 훨씬 더 잘해’ 같은 펑크적 자신감이 항상 동시에 작용하지 않았나 싶어요. 그러면서 굳이 안 가도 될 길을 멀리 돌아오느라 앨범마다 장르를 넓게 팠던 것 같고요 (ADHD). 물론 그동안의 모든 검정치마의 음악이 내 개인적 음악 취향의 변화를 그래프처럼 따라오긴 했지만, 계속해서 몇곡 정도는 내 스타일이 아니더라도 꼭 ‘나 이런 것도 잘함’ 같은 인정욕구에 기반한게 있었달까요 (ex. 기다린 만큼 더, 민, 할리우드 등등). 무슨 말인지 모르겠죠? 괜찮아요. 자조 섞인 말로 들렸다면 절대 그런건 아니고 그냥 지난 과정을 돌아보니 새삼 음악을(만) 되게 오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새 앨범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본질에 좀 더 가까워졌습니다. 속된 말로 표현해서 ‘원래보다도 더, 후까시가 없다’가 앨범에 대한 유일한 힌트라면 힌트입니다. 


얘기 한적 없는것 같은데, Everything이 더 이상 내 노래 같이 들리지 않고, 더렵혀 졌다는 생각에 잠을 못 이루던 게 몇 년 전입니다. 내가 확실히 가질 수 있는 한 조각이라고 믿었던 것이, 귀에 거슬리는 흐름으로 흘러가는 걸 지켜보며 느꼈던 어쩔수 없는 씁쓸함이 있습니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그것도 별것이 아닌게, 그 이후로 틴트러블즈가 세상에 나왔고, 저에게는 그것이 무엇보다 확실한 마법의 증거였습니다. 그동안은 음악을 하며 느껴보지 못했던 홀가분함이였으며, 여러분에게는 아마 제가 들려드릴 수 있는 가장 크고 가까운 제 개인의 역사였던것 같습니다. 요즘도 창작에서의 보상은 저에게 진짜 가끔씩만 찾아오는 편입니다. 그리고 그런 특별한 날에는 다음 앨범이 훨씬 좋을 것 같다는 믿음에 감정이 복받쳐 오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틴트러블즈가 앞으로도 내가 가장 사랑할 앨범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으니, 이번 4주년도 함께 축하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는 아직까지도 이세상 모든게 시시할 정도로 음악만이 좋고요, 노래를 만들때만 나의 허술하고 말캉한 존재에 가치를 부여할 수 있다고 느낍니다. 어쩔때는 한계가 보여서 울고 싶고, 100번을 죽어도 벗어나지 못 할 저주같기도 해요. 그럼에도 이제는 그 과정에 여러분이 함께 한다는 사실에 날이 갈 수록 큰 위안을 얻습니다. 내 진심이 글로 전달 될까요. 서둘러 오지는 못 해도 쉽게 떠나지 않을게요. 항상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다다음 진달래 필때 봅니다. 


-조휴일<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