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lette
아주 약간의 상상력과 짓궂음을 더해서 알렛을 지금 머릿속에 그려본다면, 인어공주(1989)의 우르슬라에 스타워즈 시리즈의 자바 더 헛을 살짝 섞은 모습이다. 일반 가정집 화장실 만한 부엌에서 거의 항상 혼자 앉아 맥주를 마시던 그녀는 천장에 닿을 듯이 뻗친 검은 곱슬머리와, 당장이라도 터질 것 같은 눈동자를 감싼 흰자를 번뜩이며 우리를 맞이해주곤 했었는데, 기분이 좋을 때 - 아마 많이 취했을 때는 침을 잔뜩 묻혀가며 억지로 뽀뽀를 했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알렛을 봐온 바스코는 그녀의 애정표현을 즐기는 편이었고, 난 그녀 얼굴의 사마귀가 내 볼에 닿는 게 소름 끼치게 싫으면서도, 보는 앞에서 침을 닦는 건 또 미안해서 닦은 적은 없었다.
‘알렛 잘 있었어요? 일렉트라는요?’
‘안녕 애기들아. 나도 몰라, 어젯밤부터 안 들어왔어... 썅년’
‘우리 여기서 좀 놀다 가도 돼요?’
‘나도 몰라. 너네 혹시 5불 있니? 이게 내 마지막 담배라서’
‘아뇨... 미안해요’
공연 때 알렛과의 기억을 짧게 얘기한 적이 있는데, 요약하면 추석 명절 우리 집에서 남은 동태전을 들고 놀러 갔을 때 알렛이 아주 맛있게 먹었다는 내용이었다. 이 기억이 아직까지 내게 가장 선명한 이유는 그날을 제외하고 그녀가 뭔가를 먹는 것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정부 지원금으로는 술을 살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그녀가 어떻게 맥주를 사는지 알 수 없었다. 확실한 건 그 집에서 크래커 부스러기 하나조차 음식 비슷한 걸 본 적이 없었고, 왜인지 그날 처음으로 알렛의 비대한 몸이 오직 맥주로만 만든 것이었다는 사실도 깨달았었다. 그렇다고 그녀가 항상 그런 모습은 아니었다. 앞서 그녀를 괴물처럼 묘사하긴 했지만, 헬스 엔젤스와 어울리던 젊은 시절 사진 속의 알렛은, 토탈리콜(1990)에 나오는 여주 멜리나와 매우 닮은 모습이라서, 집에 놀러 갈 때마다 우리는 그녀의 리즈시절 사진을 자주 돌려 보곤 했었다.
당시에도 추측했지만 알렛은 여러 가지 크고 작은 정신적 질병에 시달렸던 것 같다. 목소리는 또 얼마나 컸는지, 뭔가 음침한 얘기를 하느라 속삭일 때를 제외하고는, 바로 앞에서 대화할 때도 기본 데시벨이 금요일 밤 11시 헌팅 포차 만취남 레벨이었다. 어디까지 믿어야 될지 모를 것 같은 얘기들을 자주 늘어놓고는 했었는데, 그중에는 항상 일렉트라의 갓마더에 관한 얘기도 있었다. 뉴욕의 부잣집 딸로 태어나서 평생을 헤로인 중독자로 살았음에도 별문제가 없었다고. 단지 대부분의 중독자들은 돈이 바닥나면서부터 더러운 길거리 약으로 갈아타기 때문에 인생이 힘들어지는 것이지, 돈만 많으면 헤로인을 하면서도 나름 건강하게 잘 살 수 있다고 했다. 얘기의 끝은 비참한데, 어느 날 알 수 없는 이유로 꼬리를 자르고 싶었던 딜러가 그녀의 헤로인에 드레이노 가루 (머리카락도 녹인다는 강력한 배관세척제)를 섞어주었고, 중환자실에 누워 몇 날 며칠 동안 혈관이 녹아내리고, 장기가 망가지는 것을 온전히 다 느끼며 죽었다고 했다. 어려서부터 같은 얘기를 수백 번 듣고 자랐을 일렉트라도 결국 헤로인에 손을 댔으니, 지금 보면 팔자라는 게 정말 있나 싶다. 세상의 온갖 위험을 끌어당길듯한 이름과, 갓마더와의 연결고리까지, 정말 어쩔 수 없었을까.
그 집을 드나들던 사람들 역시 특별했다. 모두 알렛의 지인들이었지만 사회의 울타리에서 약간씩 벗어나있던 사람들을 우리는 (적어도 나와 바스코는) 항상 적당한 거리에서, 적당한 호기심으로만 대하는 법을 알았다. 그 집에서 마지막으로 만난 손님은 알렛의 새 남자친구였다. 이미 일렉트라는 집에 아예 안 들어오는 시점이었지만 비교적 담이 작은 우리가 일탈을 즐기려면 그곳만큼 맘 편한 장소가 없었다. 그날 알렛 대신 우리를 맞이한 사람은 까무잡잡한 피부의 외국 남자였다. 크로아티아에서 화물선박으로 밀입국했다는 그의 이름은 ‘엘비스’였다. 액면가는 36살이었지만 알렛은 그를 18살로 소개했다. 대충 들어보니 동네 바에서 우연히 만난 날부터 이미 집에 들어와 함께 살고 있는 것 같았다. 하나부터 열까지 범죄의 느낌을 진하게 풍기던 남자는 '나이쓰' 라는 표현 말고는 영어를 할 줄 몰랐고, 담배로 지진 거 같은 목에서는 말할 때마다 초처음으로 가래 끓는 소리가 났었다. 처음 보는 표정으로 비대한 몸을 트는 알렛에게, 눈썹 한번 찌푸리지 않고 혓바닥을 밀어 넣는 엘비스를 보며 우리는 알 수 없는 두려움을 느꼈었다. 또래였음에도 그는 분명 위험한 남자였고, 더 이상 우리가 그 집에 드나들 일이 없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물론 그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동네엔 가뭄이 계속됐다. 나와 라라 그리고 바스코 우리 셋은 뭐라도 건지려고 늦은 밤까지 일렉트라의 집 앞을 서성이고 있었다. 엘비스가 들어온 이후부터 이미 우리는 초대받지 않은 손님인 걸 알았기 때문에 아무도 집안으로 들어가자는 얘기는 꺼내지 않고 있었다. 그때 가로등이 밝히던 골목 맨 끝에서 작은 실루엣이 우리를 향해 다가오는 게 보였다. 실루엣은 점차 사람의 모습을 띄었고, 우리 사이에 가로등이 두 개쯤 남았을 때 갑자기 하늘로 뭔가를 던지는게 보였다. 곧바로 엄청난 소리와 함께 물체는 정확히 그 사람 얼굴로 떨어졌고, 잠시 주저앉나 싶더니, 금방 실없는 웃음을 터뜨리며 다시 우리 쪽으로 걸어왔다. 가만히 보니 일렉트라였다.
‘꺄하하하하 너네 방금 봤니??? 아 진짜 봤어야 되는데’
‘……너 괜찮아?’
‘난 분명히 내가 물병을 잡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꺄아하학, 정말 병신 같네’
‘어디서 오는 거야?’
‘누구세요? 나 알아요?’
methhead로 전락해 버린 일렉트라가, 딱지 앉은 창백한 얼굴위로 텅 빈 눈을 뜨며 우리에게 물었다. 마침 밖의 소란스러움에 이끌린 알렛이 발코니로 몸을 드러냈다. 그녀는 아예 다른 사람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얼굴이 달라져있었다. 해골처럼 삐쩍 마른 얼굴은 환하게 웃고 있었지만 겨드랑이부터 팔목까지 한없이 늘어진 살은 그녀의 몸에 거적대기처럼 걸쳐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고는 아무도 알아듣지 못할 말을 연달아 크게 외치더니 금세 다시 사라져 버렸다. 잠시 후 일렉트라 마저 집에 들어가고 한참 동안 흐르던 정적을 라라가 깼다.
‘Ugh, did you see Arlette? I think she started shooting up cocaine since Elvis moved in’
‘What? you can shoot up cocaine?’
‘You are not supposed to unless you are a fucking crackhead, but I heard some things last time I was over at their place. Besides, knowing their financial situation the stuff they are using is probably cut with dirty shit. I bet she’s just straight up shooting speed at this point’
‘But fuck…. that was really scary just now … what was she yelling? Did she even see us?’
’No fucking clue ….’
이 얘기를 어떻게 끝맺어야 할지 모르겠지만, 결국 그날은 우리가 알렛과 일렉트라를 본 마지막 날이 되어버렸다. 가사와는 다르게 더 이상 아린 기억도 아니고, 또 선명하지도 않지만, 틴트러블스는 아무리 밝은 색깔로 덧칠해도 나에게만 보이는 밑그림이 남아있다. 영영 흐려지기 전에 가엾은 그녀들을 기억해 봤다.
*추가* 편의상 글에서 일렉트라 엄마의 경우 가명을 사용했다. 그리고 이건 최근에 알게 된 사실인데, 라라와 일렉트라는 7살 때 편부모/저소득층 아이들만 참여할 수 있는 썸머캠프로 떠나는 버스 안에서 처음 만났다고 한다. 수십 명의 애들이 버스가 떠나가게 우는 와중에 라라와 일렉트라만 울지 않고 있다가 서로 눈이 마주쳐서 옆자리에 앉게 되었다고 한다. 그 와중에 일렉트라는 워크맨으로 알렛이 준 메탈리카 테이프를 듣고 있었다고. 캠프에 도착해서는 3인 1실을 쓰게 되었는데, 거기서도 우연히 일렉트라와 라라가 같은 방에 배정이 되었고, 다른 한 명의 여자아이가 마음에 안 들었던 일렉트라는 걔가 레즈비언이라는 소문을 퍼뜨려서 다른 방으로 보냈다고 한다. 둘이 친해진 계기가 웃겨서 적어본다. 떡잎부터 노랬던 게 맞구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