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September 16, 2018

눈이 따가울 정도로 방안에 연기가 자욱하지 않는 이상 프라이팬이 불타는 것도 알아챌 정도로 냄새에 둔감하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냄새가 있다. 따뜻한 빵에 가득 스며든 고급 트러플 오일의 , 흰자가 가득해지는 땀에 젖은 파운데이션 냄새, Bounce 섬유 유연제를 3 정도 넣고 아주 바짝 돌려 말린 빨래 냄새,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이 냄새. 생오이에서 나는 비릿함 말고 올리브 영에서 것만 같은 싸구려 오이 미스트라던가, 국민 장수 제품인 오이 비누에서 나는 인위적인 향은 항상 나를 행복하게 한다. 나는 오이향에 대한 내 집착의 기원을 알고 있다.

17 첫사랑 상대는 (라고 35이나 먹 쓰려니까 너무 아득해서 마치 없는 이야기로 거짓말이라도 지어내는 같지만) 오이 향이 나는 미스트 / 바디 스프레이를 쉬지 않고, 정말 쉬지 않고 뿌려대곤 했었다. 여름이 덥기도 더웠고, 이목구비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지성이었던 피부 위로는 화장이 떡칠 되어 있었으니 어쩔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내게도 가끔 미스트를 뿌려줬었는데, 그때마다 우리에게 같은 향이 난다는 사실이 얼마나 좋았는지. 친구들이 알아채도 창피하다는 생각이 하나도 들었다. 그리고 여름이 갑작스럽게 끝났을 때, 나는 매일 벽에 얼마나 머리를 세게 박아야 죽을 있을까 같은 고민하다 정말 초라한 모습으로 그녀가 애용하는 미스트를 사 왔던 적이 있다. 이게  기억의 전부다.


평소에 손을 자주 씻는 편이라서 세안 비누 외에 쓰는 비누를 따로 구입해야 한다. 예전에 마트에서 집사람에게 비누를 고르라고 해 놓고서는 막상 살구씨 비누를 골라오자 오이 비누가 좋지 않겠냐고 계속해서 물어봤던 적이 있다. 미안해 할 필요도 없고, 전혀 미안 하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내가 오이 비누를 좋아하는지에 대해서는 얘기를 줘야 같아서 구구절절 옛날 얘기를 해줬는데, 관심조차 안 보이길래 그냥 알아서 비누를 담아왔었다. 그냥 '오이 비누 사자' 라고 얘기 할 걸 그랬다. 하긴, 나도 집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라면 냄새에 다른 이유가 있다고 해도 별생각이 없을 같다.